- 탁명환 소장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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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단의 공통점
- 탁지일 편집장 jiilt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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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1 08:48 입력 | 2018.12.21 09:00 수정
탁명환 소장이 하나님의 품에 안긴 지 벌써 24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탁 소장의 삶과 사역을폄하하려는 이들이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앞장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아가며 일하는 선각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 뒤를 쫓으며 끊임없이 평가하고 비판하는 평론가들이다. 탁명환 소장은 선각자였다. 선각자의 삶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만약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다른 이들을 위해 실패할 경우의 수를 하나 줄여주었으니 성공적이고, 뜻을 이룬다면 다른 이들이 그 길을 따라올 것이니 역시 성공적이다. 탁명환 소장과 현대종교에 대한 이단들과 이단옹호자들의 비난이 사후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은, 아직도 탁 소장과 현대종교의 사명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2018년 한 해 동안 고 탁명환 소장의눈을 통해 오늘날 세상과 교회를 바라보려고 한다. [편집자 주] ▲탁지일 교수
본지 이사장 겸 편집장
부산장신대학교 교회사 |
첫째, 임박한 종말 주장으로 위기감을 조성한다. 그들은 세계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말하면서 숨 가쁜 세상 멸망의 카운트다운을 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절박한 위기의식에 빠지도록 한다. 무시무시한 세상의 종말에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들 이단들의 공동체에 가담해야 된다고 역설한다.
사람들은 세상의 문제들이 인간의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일 때 결국 초인적인 해결에 소망을둔다. 세상의 종말에 대해 기성교회에서는 그렇게 절박하게 말하지 않으므로 이단들로부터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세상의 위기에 대해서 듣고 나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불안에 떨고 공포감에 젖는다.
그때 바로 그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해결 방안과 안정을 줄 수 있다고 하여 미혹한다. 한국의 이단 종파들 중에 말세 심판의 위협을 내세우지 않는 집단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불확실성과 불안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도피처를 찾거나 돌파구를 갈구하게 된다. 그때 이단자들은 ‘오직 충성과 복종’만을 요구하면서 서서히 신도들을 세뇌한다.
둘째, 이단자들은 그리스도 중심적이 아니고 자기중심적이다.(롬3:9~20) 자기 이익과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가치관을 인정하지 않고 이타적(利他的)인 행동을 못한다. 이단 교주들은 모두 자기에게 충성하고 복종하기를 요구하고 자기의 명령은 신의 명령이나 계시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간 개개인의 영혼이나 인권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이익과 지위 안락을 위하여 신도들을 도구와 기계처럼 이용할 뿐이다.
그들은 자기네들의 이익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보다 우선한다. 어떤 여호와의 증인과 장시간 토론 끝에 그를 굴복시켰지만, 그는 필자의 주장이 성서적이라는 것을 긍정하면서도 자기의 체면과 지위 때문에 패배를 공적으로 시인하지 않았다. 통일교 현직 간부들을 만났는데 그들의 한결같은 말은 통일교 문선명 교주의 우상화와 비성서적인 교리에 대해 필자의 입장에 동조하면서도 “우선 먹고 살길이 막연하여 그대로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중에 이대복씨 같은 사람은 용단을 내려 그들 지도급에게 공개서한을 보내고 통일교를 떠나 하나님의 품에 돌아온 사람도 더러 있다. 이단의 교주들은 표면적으로는 겸손하고 자기자신에 대해 언급할지라도 자기야말로 이 세상에서 말세에 처한 백성들을 구출하여야 할 사명을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으므로,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라고 그의 행동과 주장에서 나타낸다.
그들 교주를 부르는 존칭에서도 그들의 특별한 사명에 대해 알게 해 준다. 그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중차대한 사명을 가졌으므로 늘 하나님과 직통으로 교통한다고 주장하며 자기의 말은 자기의 입만 빌리는 것이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신도들을 꼼짝 못하게 붙들어 맨다.
셋째, 이단자들은 전술한바 자신들은 하나님과 직접 교통하고 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신격화한다. 그들은 디모데전서 2장 5절과 상반되게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로서 나선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택하여 세운 적도 없다. 객관적인 인증이 없이 자기 주관적인 계시나 환상 등 신비체험을 내세워 신도들을 설득했다.
문선명 교주는 그의 나이 17세 때인 1936년 4월 17일. 부활절 아침에 예수와 직접 만나 그 계시를 받고 재림하는 예수로 오게되었고 거기서 보여진 것이 ‘원리강론’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객관성이 없고 다만 문 교주의 주관적인 체험이나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넷째, 이단자들은 자기네들을 통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마지막 때 환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독교복음침례회, 예수교복음침례회, 대한예수교침례회 등 속칭 ‘구원파’로 지칭되는 이들은 자기네에게 와서 성경공부를 하여 구원의 확신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구원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극단적인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다. 통일교나 여호와의 증인, 전도관, 몰몬교, 새일파, 박윤식의 대성교회 등 모든 이단들은 자기네들이야말로 마지막 날에 택한 백성이라는것이다. 특히 통일교의 선민의식은 가히 광적일 정도로 심각하다. 신도들은 자신보다는 나라와 국가와 민족과 세계를 위해 일한다는 환상속에 빠져 가장 기본적인 개인과 가정생활을 파괴한다.
다섯째, 이단들은 불가시적인 사후(死後)의 천국을 주장하는 게 아니고 가시적인 생전(生前)에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지상천국을 내세운다. 그들은 내세관이 없고 매우 현세적인 관념을 갖고 있다.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보다는 살아서 이 땅 위에 천국을 이뤄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천국은 인간이 만드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아래 있는 것이다.
통일교는 문선명교주를 중심 삼고 공생공영공의주의(共生共榮共議主義)를 실현할 수 있는 지상천국을 건설해야 한다고말한다. 박태선은 지상천국을 실현하기 위해 경기도 소사와 덕소, 경남 양산 등 세 곳에 제1, 제2,제3 신앙촌을 세우고 천년성(千年城)혹은 천년왕국(千年王國)을 이룩한다고 신도들을 끌어 모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그 천년성이 폐허가 돼버리고 폭력과 무법이 판치는 무대가 되고 말았다. 그 외에도 대부분의 이단들은 그들의 힘으로 지상천국이나 환란날에 안전한 피난처를 건설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여섯째, 그들은 가급적이면 외부와 단절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등 폐쇄 지향적이다. 항상 ‘비밀’을 강조하지만 듣고 보면 비밀이랄 것도 없는 것을 마치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비밀이나 되는 것처럼 법석을 떨어댄다. 사람들은 ‘비밀’이라면 매우 흥미와 관심을 갖는다. ‘우리끼리만 알고 넘어가야하는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곧 천기(天機)를 누설하는 중죄(重罪)에 해당되므로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박태선 신앙촌은 초창기에 삼엄한 경비를 펴 외부인의 출입이나 접근을 통제하면서 그들 나름대로 부정과 범죄를 숨겨왔으나 결국 언젠가는 다 드러나게 되는 것이었다. 팔영산기도원교주 전병도, 일월산기도원교주 김성복, 호생기도원교주 김종규, 동방교교주 노영구 등 모두 폐쇄적인 집단들이다.
특히 동방교는 신도들에게 입조심 훈련을 시킨다. ‘입’하면 두 입술이 다물어지고 ‘아가리’하면 두 입술이 떨어지니 ‘입’이 되어야지 ‘아가리’가 되면 안 된다는 기발한 아이디어까지 창출하여 비밀누설을 예방하는데 부심하고 있다.
일곱째, 비윤리 지향적이며 부도덕적인 면을 공통점으로 들 수 있다. 이단들은 상식으로 납득할수 없는 비윤리와 부도덕을 교리적으로 합리화하고 있다. 특히 윤리성문제에 있어서는 우선 교리적인 것과 비교리적인 것이 있다. 통일교의 혈통복귀원리(血統復歸原理)나 전도관 박태선의 섹스안찰, 새일파의 생수가름, 신권도학의 창조법도와 같이 교리적인 비윤리적 성의 제전이 있는가 하면 팔영산기도원의 전병도나 일월산기도원의 김종규 여타 교주들이 그 위력을 악용하여 여신도들에게 비윤리적인 행위를 자행한 것은 비교리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계의 경우가 아닌 용화교의 경우 교주 서백일(徐白一)은 ‘음양도수’(陰陽道數)라는 명목으로 그가 데리고 있던 여수좌(女首座)들을 간음, 보호자 간음혐의로 구속 되었다가 풀려나 한 신도의 칼에 찔려 죽은 비극의 사건도 있다. 동방교의 교주 노광공의 경우는 변태성욕자로밖에 볼 수 없는 부도덕성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이 짓밟은 여성을 부하에게 하사하여 자기가 보는 앞에서 부도덕한 행위를 시켜놓고 그것을 즐기는 변태성욕자였던 것이다.
교주가 그런 인물이므로 그 간부들은 모두 그런 경향이었고 여신도들은 간부들에 의한 섹스의 제물이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대부분의 이단의 교주들은 문란한 성생활, 신도들의 재산갈취, 상습적인 거짓말, 신도들의 인권유린, 폭력에 의한 굴복 강요 등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고도 곧장 하나님의 뜻이니 계시니 하는 말을 내세워 합리화하곤 한다.
✽ 위의 내용은 1986년에 발간된 『기독교이단연구』에서 발췌한 것이다. 한국 기독교이단연구의 가장 대표적인 지침서인 이 책의 서문에서 탁명환 소장은, “각급 신학교에서는 비교종교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 현실에 비추어 당면과제로써 기독교 이단론을 가르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단론은 그간 교회사의 일부로써 초대 교회나 중세교회사에서 일부 다루어졌으나, 이제 본격적으로 신학교육기관에서 가르쳐야 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여기에서 본 이단론 집필의 의도가 있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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