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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종교 |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23.01.06 08:21 입력

5000명이 죽었다는 것을 5000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000건 일어났다가 맞다. -기타노 다케시-

1. 되풀이되는 참사, 희생자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표현할 길이 없어 언어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물론 권력자들은 모를 것이다. 이(그간의 모든) 참사가 얼마나 무겁고 비통한 일인지 안다면,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확실한 사법적 책임’이라는 비정한 말만 강조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라고 박성민(전 청와대 청년 비서관)이 말했다.

‘왜 그런 곳에 갔는가?’, ‘사탄을 숭배하는 행사에는 왜 참여를 해서!’ 등의 말은 지금 전혀 필요치 않고 해서도 안 될 말이다. 8년 전 “세월호 참사 유족이 광화문광장에서 거짓으로 단식 농성하는 게 꼴사납다”며 일베 회원들이 단체로 이른바 ‘폭식 시위’를 벌였던 일을 떠올려봐도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사라진 지 오래다. 참사 원인을 밝히는 일에 앞서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부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 사람이 오고 떠나는 것은 정현종의 시 ‘방문객’처럼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는 것이며,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함께 아파하지는 못한다 해도 조롱과 비난만큼은 자제하는 것이 인간 된 도리 아니겠나 싶지만 떠난 이들과 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이들이 늘어만 간다. 두렵고 떨린다. 지금까지 그것과는 반대의 삶을 사는 이들 때문에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이제 더는 아니지 싶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먼저 떠나간 이들 때문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그러한 자들과 함께 지내야 해서다.

물론 누구도 이 문제들에 있어 자유로울 수는 없을 테다. 세월호를 오랫동안 기억하겠다고 각오에 각오를 거듭했고, 이태원 참사 등의 문제에도 순간 아파하고 슬퍼하긴 했으나 늘 그랬듯 살아남은 것에 안도하며 편히 잘만 살고 있으며, 안락함에 묻혀 변함없으리라 믿었던 다짐들이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연약하고 부족한 삶의 변화를 다짐했으나 결국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살다 연말의 후회로 이어지는 삶이 55년째 이어지고 있다. 근본적인 변화는 최소한의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한 탓이다. 같이 아파하고 같이 기뻐하는,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삶을 사는 것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면 한다.

2. 그리고 이단 피해자들

위의 아픔에 더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기도 제목은 이단 피해의 문제다. 200만 명의 이단 피해자들, 비대면 시대가 되면서 각종 온라인을 통한 이단의 포교로 인해 그보다 더 늘었을 듯싶다. 그들의 회복과 치유에 있어서 국가도 자유로울 수는 없겠으나 교회와 가족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세상의 참사나 이단의 피해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든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피해자를 위로하지 못하고, 사건 재발에 관한 고민과 대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누구도 같은 아픔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 없고, 겪을 아픔에 함께하는 이들도 없을 것이다. 이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동안 본지를 통해 소개했던 방안 등 구체적인 대처가 몇몇 교회만이 아닌 모든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 제기되고 마련되어지는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특히나 이단 2세 내지는 3세 피해자들의 회복에 관한 기도와 나눔은 올해도, 앞으로도 계속 유효했으면 싶다.

3. 회복

지금까진 위 두 문제를 같은 시선으로 들여다보진 못했으나 세상의 사건 사고들로 인한 피해나 이단 피해자들의 상처와 아픔의 크기는 다르지 않은 듯싶다. 선친의 죽음이 29년 전의 일이긴 하나 그로 인한 아픔이 변함없이 현재진행형인 것처럼 다른 이들 역시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을 것이다. 그간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진 이들을 만날 때면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의 것을 준비해주시는 하나님,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실 하나님’이 위로가 될 것으로 믿으며 기도했더랬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말과 기도가 과연 진심 어린 위로였는지, 내지는 그 언어가 맞는 말인지조차도 잘 모르겠다. 상대방의 아픔에 위로자는 쏙 빠지고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실 거라는 비겁한 위로만 더해온 것 같다. 아픔들에 직접적으로 동참하고 참여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더욱 온당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살이 날아가 과녁에 박히는 것처럼 우리의 위로도 제자리에 있는 활보다는 화살이 되어야 할 것이며, 제사장보다는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온몸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위로와 섬김이 될 것이라 믿는다.

* 내년 선친의 30주기까지 본지 자료의 전산화 작업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더불어 당시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평강제일교회의 분열과 혼란을 바라보며, 만민중앙교회나 성락교회, 그리고 JMS와 같이 그들 역시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내쫓겨지는 과정을 겪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30주기 안에 사건의 배후와 진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아울러 각각의 회복들이 모여져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길 소망한다.

‘내가 뭔 잘못을 했냐’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권력자들은 알기나 할까? 한 사람이 사라지는 일은 한 우주가 사라지는 일이라는 것을. 그 사람으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사랑하며 삶을 살아갔던 사람들의 우주도 함께 파괴되는 일이 바로 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 박성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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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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