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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이단(異端)과 이설(異說)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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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종교 | 이상규 교수
2022.03.22 09:26 입력

시작하면서: 이단에 대한 역사적 검토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기원 30년경 예루살렘에 교회가 설립된 이후 첫 300년을 ‘초기 기독교’라고 말할 때 이 기간 동안 교회는 두 가지 도전에 대응해야만 했다. 첫 번째는 외부적인 것인데, 교회에 대한 박해였다(행8:1; 고전4:9-13; 갈1:13; 살후1:4; 딤후3:12). 교회 설립 이후 첫 30여 년간은 유대교의 박해를 받았으나 기원 64년 이래로 로마제국의 정치적인 박해를 받았다.

잠정적인 혹은 일시적인 자유를 누린 기간도 없지 않았으나 기독교회에 대한 공격 혹은 박해는 오래 지속되었고, 250년 데시우스 황제 이후 박해는 보다 조직화되었다.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는데, 물리적인 탄압과 이론적 공격이었다. 이는 교회에 대한 도전이자 교회의 위기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런 외부적인 도전은 교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였다.

교회가 직면했던 두 번째 도전은 교회 내부에서 일어난 이단과 이설들이었다. 이단과 이설은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고, 이는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권위, 그리고 진리의 기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래서 교회는 무엇이 정통이고 무엇이 이단인가를 분명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이단들의 활동은 분파운동으로 이어져 초기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주장하게 된 것이다. 초기 교회 공동체에서 구약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었고, 베드로와 바울의 때와 마찬가지로 거짓 교사들이 교회와 성도들을 위협하고 있었다(딤전1:3-7; 벧후2:1-3; 요일2:18-19, 26).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대두된 이들이 변증가들 혹은 호교론자들이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있어서 이단은 크게 두 가지 배경에서 나왔다. 첫째는 유대주의(민족주의 혹은 율법주의)적 배경이고, 다른 하나는 이교 철학이었다. 유대주의와 이교 철학이 기독교가 생성되는 당시의 문화적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단은 성경의 가르침보다는 문화적 상황을 중시하고, 교회의 역사성보다는 현실성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면서도 이단의 가르침 속에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교만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이 숨어 있다. 이단 중에는 매우 경건하거나 신령한 것처럼 보이고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그 배후에 인간의 교만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모든 이단은 근본적으로 인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단은 교회사의 전 시기에 항상 있었던 문제였지만 첫 3세기 어간에 제기된 이단이나 이설들은 그 이후 교회사에 나타난 이단운동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교회사에 출현했던 수많은 이단들은 따지고 보면 초기 기독교회에 나타났던 이단들이 새로운 이름으로 나타난 반복과 복제라는 점에서 “해 아래 새 것이 없다”(전1:8-11)는 말씀 그대로이다. 이런 점에서 초기 기독교회의 이단 혹은 이설들에 대한 이해는 그 이후 교회사에 대두된 이단 사상을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교회에서의 이단의 출현과 이에 대한 교회의 대응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이단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만큼이나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의 탄생과 거의 동시적으로 이단이 출현했으므로 이단의 역사는 교회사의 전 시기에 있었던 교회사의 단면이자 교회사의 이면(裏面)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단사 연구는 교회사를 파악하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단의 출현은 결과적으로 무엇이 정통인가를 보다 분명하게 제시해 주었다는 점이다. 거짓이 진리를 사모하게 하고, 어두움이 빛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듯이 이단이 있기에 정통 신앙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19절에서 “너희 중에 편당(偏黨)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고 했는데, 파당이 일면 진실한 사람이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진실한 사람들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너희들 가운데 분파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렇듯 이단의 출현으로 무엇이 바른 신앙이며 무엇이 정통인가를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셉 로쯔(Joseph Lortz: 1887-1975)는 이단의 출현을 “다행한 과실(felix culpa)”이라고 했고, 로마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는 “교회는 자신에 대한 반대를 듣고 ... 이를 거부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진리를 더욱더 명백하게 인식하게 된다”고 했다.

셋째, 교회가 정통 신앙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고투해 왔다는 점을 알게 된다. 오늘 우리가 배우고 가르치고 계승해야 할 바른 신앙 혹은 정통신학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무수한 교리 논쟁과 치열한 토론을 통해 형성된 진리라는 사실이다. 교회는 정통 신앙과 정통 신학을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경주해 왔다.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교회 외부로부터의 박해보다 교회 내부의 이단과 분파가 훨씬 위협적이라고 보았고, 변증가들과 초기 교부들의 반 이단적 저술을 보면 초기 교회가 얼마나 치열하게 이단들에 대항하여 바른 진리를 파수하려고 노력해 왔던가를 알 수 있다. 후에 살펴보겠지만,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이단의 출현은 교회의 조직과 정치 제도의 발전, 정경의 형성, 그리고 신앙고백의 구체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미 1세기에 바울은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2:17)라고 말하고,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라”(딤후2:15)(ὀρθοτομοῦντα τὸν λόγον τῆς ἀληθείας.)고 했다. ‘분변하라’(오르토토메오)는 단어는 신약에서 오직 한 번 나오는 희귀한 단어인데, “똑바로 자른다”는 의미가 있다.

바울은 복음의 변질을 보면서 디모데에게 ‘사도로부터 전수받은’(딤전1:18-19, 2:7, 3:9, 4:1, 6, 16, 6:12, 20, 21) ‘바른 교훈’(1:10, 6:3)을 고수하고 가르치라고 권면했다. 그리고는 전통적인 신앙고백,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딤전3:16)고 하심으로 초대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송영을 남겨주고 있다.

앞으로 10회에 걸쳐 연재할 이 글에서는 초기 교회에 출현했던 이단과 이설들에 대해 소개하고 교회는 이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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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이단(異端)과 이설(異說)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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