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독일의 한 신천지 탈퇴자가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한국에서는 사이비 단체에 들어간 사람을 돕는 일을 목사님들이 하나요?” 이 질문은 필자에게 다소 생소하게 들렸다. 한국에서는 이단·사이비 단체에 빠진 사람이나 그 가족을 돕는 일이 자연스럽게 교회와 목회자의 역할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럼 독일에서는 이런 일을 누가 하나요?”라고 되묻자, 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 “치료사나 상담사가 하죠.” 이 짧은 대화는 한국과 해외 사회가 이단·사이비 단체로 인한 피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통일교, 신천지, 하나님의교회, JMS와 같은 단체로 인한 문제를 주로 ‘종교적 문제’로 인식하는 반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를 ‘사회적·심리적 문제’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는 이단·사이비 단체를 논할 때 “그들이 무엇을 믿느냐”에 초점을 맞춘다면, 해외에서는 “그들이 사람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통제하느냐”를 기준으로 단체를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이단과 사이비, 그리고 해외에서 사이비를 규정하는 용어들 한국에서 문제가 있는 종교 단체를 지칭할 때 가장 흔히 사용하는 표현은 ‘이단’과 ‘사이비’이다. ‘이단’은 정통 기독교 교리에서 벗어났다는 신학적 판단을 전제로 하는 용어이며, ‘사이비’는 종교적 외형을 띠고 있으나 본질적으로 거짓이라는 사회적·도덕적 평가를 포함한다. 두 용어 모두 단체의 교리와 신앙 내용을 중심으로 문제를 규정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반면 해외에서는 이 두 단어를 동일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이단’(heresy)은 주로 교단 내부의 신학적 논쟁 영역에서 사용되는 종교적 용어로 제한되는 반면, ‘사이비’(cult)라는 표현은 종교 여부와 무관하게 개인의 행동과 사고, 감정을 체계적으로 통제하는 집단을 지칭하는 사회적 개념에 가깝다. 해외에서 사이비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들의 관심은 종교의 진위나 교리의 정통성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통제와 조작이 개인과 사회에 어떤 실제적 피해를 남기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 속에서 ‘사이비’라는 용어 역시 확장됐다. 파괴적인 사이비 단체(destructive cult), 고통제 집단(high-control group), 강압적 통제 집단(coercive group), 부당한 영향력(undue influence)과 같은 개념들은 모두 집단 내부에서 개인의 선택권이 어떻게 제한되고, 비판이 어떻게 억압되며, 탈퇴 이후까지 영향력이 지속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분석 언어이다. 이 흐름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바로 스티븐 핫산과 릭 로스이다. 해외 전문가들은 무엇을 문제 삼는가
스티븐 핫산은 과거 통일교에서 활동했던 전직 신도로서, 탈퇴 이후 심리학과 상담 분야를 공부하며 고통제 집단의 작동 방식을 연구해 온 인물이다. 그는 현재 ‘프리덤 오브 마인드 리소스 센터’(Freedom of Mind Resource Center, https://freedomofmind.com)를 설립해, 고통제 집단에 대한 교육과 탈퇴자 및 가족을 위한 회복 지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핫산은 종교의 진위나 교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 집단이 개인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고 통제하는지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가 제시한 행동·정보·사고·감정 통제 모델(BITE) 모델은 집단이 구성원의 일상 행동을 관리하고, 정보 접근을 제한하며, 사고의 틀을 고정시키고, 감정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개인을 종속시키는 구조를 설명한다. 이 모델에서 문제의 핵심은 특정 신앙 내용이 아니라, 그 신앙이나 이념이 개인의 자율적 판단을 차단하는 도구로 기능하는 구조 자체에 있다. 릭 로스 역시 유사한 관점에서 문제적 집단을 다루어 온 인물이다. 그는 ‘컬트교육연구소’(Cult Education Institute, https://culteducation.com)를 설립해 수십 년간 파괴적인 사이비 단체와 고통제 집단에 대한 사례, 법적 판례, 피해 경험을 수집·정리해 왔다. 그의 작업은 신학적 판정이나 교리 논쟁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러한 집단이 개인과 가족, 사회에 남긴 실제적 피해를 기록하고 교육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은 분명하다. 문제는 특정 교리가 아니라, 그 교리나 이념이 개인의 자유로운 판단과 삶을 어떻게 억압하는가에 있다. 종교가 아니어도 ‘사이비’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외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사이비(cult)’라는 개념은 종교 단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해외에서 분석된 여러 사례는 사이비 문제가 특정 신앙이나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통제 구조와 인간 조작의 문제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자기 계발 단체였던 넥시움(NXIVM)이다. 넥시움은 1990년대 후반 미국에서 설립된 자기계발 및 리더십 훈련 단체로,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잠재력 개발과 윤리적 리더십을 강조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표방했다. 이 단체의 창립자이자 실질적 지도자인 키스 레이니어(Keith Raniere)는 자신을 ‘세계에서 가장 지적인 인물’로 소개하며 내부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형성했다. 넥시움은 종교 단체를 자처하지 않았고, 외형상으로는 기업 교육이나 성공 코칭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아 사회 각계의 인사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점점 다른 구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교육 과정은 단계가 올라갈수록 고가의 프로그램으로 이어졌고, 구성원들은 점차 더 많은 헌신과 복종을 요구받았다. 비판적 질문은 개인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태도로 규정되었으며, 지도자에 대한 의문은 곧 도덕적 결함으로 해석되었다.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내부에서 비밀리에 운영되던 하위 조직으로, 이곳에서는 절대적 복종과 심리적·신체적 통제가 정당화되었다. 이러한 통제는 종교적 교리 없이 이루어졌지만, 행동과 정보, 사고와 감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고통제 집단(highcontrol group)의 특징을 보였다. 결국 내부 고발과 언론 보도를 통해 구조적 문제들이 드러났고, 키스 레이니어는 중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1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넥시움은 해체되었다. 이 사례는 종교적 신앙이 없어도 통제 구조만으로 충분히 사이비 집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비슷한 맥락에서 자주 언급되는 또 다른 사례는 1950~70년대 미국에서 활동했던 공동체 운동 시나논(Synanon)이다. 시나논은 원래 마약 중독자 재활을 목적으로 출발한 비종교적 치료 공동체였으며, 창립자 척 데더릭(Chuck Dederich)은 공동체 생활과 강한 규율을 통해 치유를 이루겠다는 이상을 제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 공동체는 점차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통제 구조로 변질되었다.
공개적인 모욕과 집단적 비난이 치료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고, 지도자에 대한 비판은 배신으로 간주됐다. 결국 시나논은 폭력 사건과 범죄 행위에 연루되며 사회적 위험 집단으로 규정되었고, 정부 개입과 함께 해체 수순을 밟았다. 이 역시 종교 단체는 아니었지만, 개인의 자율성을 박탈하고 집단에 종속시키는 방식에서는 전형적인 사이비 집단의 특성을 보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스티븐 핫산이나 릭 로스가 말하는 ‘사이비’가 종교적 범주에 한정된 개념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무엇을 믿느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그 집단 안에서 개인이 얼마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해외에서 사이비 문제를 논할 때 통제 구조와 인간 조작을 핵심 기준으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회복의 출발점은 어디인가이단·사이비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그 단체를 탈퇴한 이후의 사람들을 어떻게 돕는가 하는 문제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에서는 탈퇴자 지원이 오랫동안 교회와 목회자의 역할로 이해되어 왔으며, 교리 교육을 통한 신앙 회복이 그 중심에 자리해 왔다. 왜곡된 성경 해석과 종말론, 배타적 구원관을 바로잡는 과정은 신앙적 혼란 속에 있는 탈퇴자들에게 중요한 기준점을 제공해 왔고, 신앙을 완전히 잃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역할을 해 온 것도 사실이다.다만 이러한 회복 과정이 주로 교리적 정리에 초점을 둘 때, 통제와 조작의 경험 속에서 형성된 심리적 상처가 상대적으로 충분히 다뤄지지 못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장기간의 통제 환경 속에서 많은 탈퇴자들은 단체를 떠난 이후에도 불안과 죄책감, 대인 관계의 어려움, 판단력 저하, 정체성 혼란을 경험하는데, 이는 단순히 잘못된 교리를 배웠기 때문이라기보다, 오랜 기간 자유로운 사고와 선택이 제한된 상태에서 형성된 심리적 흔적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교리가 바로 잡혔다고 해서 이러한 상처가 자동으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탈퇴자 지원이 주로 상담과 치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은 탈퇴 과정을 신앙의 문제라기보다 통제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 회복의 과정으로 이해하며, 두려움과 의존성, 사고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둔다.이러한 접근은 탈퇴자들이 다시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신뢰하고, 집단 밖의 삶을 재구성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한계를 지닌다. 심리적 안정과 자율성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내용과 방향에 대한 정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종교적 언어와 성경 해석에 대한 혼란이 공백으로 남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결과 일부 탈퇴자들은 신앙 자체를 떠나거나, 이전보다는 통제가 약하지만 여전히 분별이 필요한 또 다른 종교·영성 집단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심리적 회복이 곧바로 신앙적 분별로 이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결국 한국과 해외의 회복 방식은 각각 중요한 요소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지점을 놓치고 있다.한국의 교리 중심 접근은 신앙의 방향과 기준을 제시하는 데 강점을 지니지만, 통제 경험이 남긴 심리적 상처를 충분히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다. 반대로 해외의 상담 중심 접근은 개인의 자율성과 심리적 회복을 돕는 데 효과적이지만, 신앙과 교리에 대한 성찰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 지점에서 탈퇴자 회복은 어느 한 방식만으로 완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교리적 회복과 심리적 회복이 함께 고려되어야 할 복합적 과제임이 분명해진다.종교의 자유인가, 책임의 문제인가
이러한 논의는 최근 통일교와 신천지가 수사를 받는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더 이상 추상적인 논쟁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이를 종교 탄압이나 신앙의 자유 침해로 규정하지만, 해외의 기준에서 볼 때 쟁점은 종교의 자유가 아니라 통제의 책임에 있다. 스티븐 핫산은 2026년 1월 29일 자 「코리아타임스」 기고에서, 현재 한국에서 진행 중인 수사를 종교 탄압의 문제로 규정하려는 시각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었다.1) 그는 “지금의 논쟁은 교리나 신앙의 내용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재정 착취와 사기, 권력 남용과 같은 중대한 의혹이 수사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이며, 누구도 특정 신학이나 교리 때문에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No one is being targeted for their theology. What’s at stake here is whether serious allegations of financial exploitation, fraud and abuse of power should be investigated.”). 이어 그는 “종교가 관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이 다르게 적용되어서는 안 되며, 이를 종교에 대한 박해로 부르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지금의 수사는 신앙을 공격하는 행위가 아니라 책임을 묻는 과정”이라고 분명히 한다(“It’s not persecution to apply the law equally, even when religion is involved. It’s accountability.”). 이러한 발언은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쟁점이 신앙의 자유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제 집단이 개인과 사회에 끼친 실제적 피해와 그에 대한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문제는 그들이 어떤 신을 믿는가가 아니라, 그 믿음과 조직 구조가 구성원들의 행동과 감정, 사고를 어떻게 통제해 왔는가이다. 교리적 판단은 여전히 교회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구조적으로 침해하는 통제의 문제는 종교 내부의 판단을 넘어 사회 전체가 다뤄야 할 영역이다. 해외에서 발전해 온 ‘파괴적인 사이비 단체’와 ‘고통제 집단’이라는 개념은 종교를 해체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자유를 가장한 통제를 구분하기 위한 언어이다. 결국 통일교와 신천지 수사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신앙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통제를 묵인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통제의 구조를 드러낼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 사회와 교회 모두에게 요구되는 책임일 것이다.-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