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종교 감별사 탁명환 종교연구가 피살”
TV와 신문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영안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경 직 목사, 김수환 추기경, 송월주 스님 등 개신교, 천주교, 불교를 상징하는 지도급 종교인 들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그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애도했다. 빈소를 차리고 솟구쳐, 한참이나 통곡해야 했다.
4,000여 명의 조문객들!
살아생전 교계나 많은 분들이 이처럼 관심을 보여 주셨다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더욱 괴 롭게 했다.‘ 남편의 그간의 삶이 헛되지는 않았구나’하는 생각과 사람들의 늦은 관심이지 만 감사했다. 돌이켜보면 남편의 삶은 외줄을 타는 곡예사였다. 늘 테러와 납치, 위협에 시달려야만 했고 밤낮없이 걸려오는 협박 전화에 몸의 신경이 곤두 서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자신 이 계획한 일에 사명감과 긍지로 살아가는 남편의 정열에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곤 했 다. 내가 협박 전화에도 당당하게 응할 수 있었고 테러로 만신창이가 된 남편의 몸을 감싸 며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역경을 넘어 하나님의 향한 믿음의 선물이었다.
이 기사는 현대종교 2009년 3월호의 일부입니다.기사의 전문은 유료회원 가입 후 PDF 파일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