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니 믿는 이들이 남겨야 할 것은 믿음의 유산이지 싶다.신천지 vs 신천지‘새 하늘과 새 땅’의 의미인 ‘신천지’라는 이름을 더는 긍정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이유는 당연히 이단 신천지 때문이다. 좋은 뜻이 담겨 있어도 같은 이름의 빌런이 존재할 때, 의미가 퇴색됨은 물론 주변의 피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령 역대 대통령 중에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이의 이름과 같은 이름이라든지, 유명한 살인마나 악당 등의 이름과 같은 경우 피해가 결코 작지 않다. 어렸을 적 이름 때문에 고통받았던 친구 하나쯤은 누구나의 기억에 있지 않은가.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닌 문제가 나아가 사회 활동에까지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불합리해 보이나 불가항력이다. 그러니 역으로 양의 탈을 쓰고 활동하는 이단들이 늘고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그러기에 때로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이단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요한계시록이나 종말 관련 등의 말씀은 본디 하나님의 것이니 곡해하는 이들에게는 거룩한 분노를 품고, 더불어 그 이름과 말씀을 다시금 우리의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구원파의 문제를 다룰 때는 건강한 구원관에 대해, 신천지의 문제를 다룰 때면 그들이 주장하는 (조건부적) 종말론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건전한 종말관에 대해 전하고 나누려 애써야 한다. 피하는 것만이 능사나 상책은 아니다. 더불어 신천지 등 이단들에게 고한다.더 이상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비겁한 술책들로 혹세무민하지 말고, 떳떳하다면 당당히 진리와 비진리를 가릴 수 있는 장에 나서길 바라며,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거짓된 위상에나 어울릴 만한 이름으로 교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나 싶다.* 최근 겁쟁이라는 뜻이 담긴 ‘터키’가 UN의 승인을 받아 ‘용감한’ 의미가 담긴 ‘튀르키예즈’로 개명된 것을 보며, 반대로 신천지 등 이단들이 귀한 이름들에 더는 먹칠하지 않길 바란다.정명석 vs 정명석배우 이름 하나만으로도 극의 몰입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최근 종영한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됐다. 예전에도 이러한 일들이 간혹 있었으나 이번엔 좀 더 명확했다. 최근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의 직장 상사 이름이 ‘정명석’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습게 생각할 이들도 있겠으나 사실이다.이단 대처 사역의 시작과 동시에 지금까지 JMS 교주 ‘정명석’이란 이름을 가족의 이름만큼이나 꺼내었던 것 같다. 직업병에 따른 부정적인 결과물이 가끔은 이렇게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니 도리어 재미있다고 해야 할지. 극 중 정명석 변호사는 40대의 기성세대지만 팀의 불찰을 후배에게 돌리지 않고 내 탓이라 말하며 자신의 잘못으로 돌릴 줄 알고, 자신의 허점을 지적하는 후배의 이야기를 인정하기도 하는 멋진 상사로 등장하나 그의 이름만 등장하면 앞의 교주와 오버랩되어 JMS가 생각나니 ‘그깟 이름 하나 갖고’라고만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싶다.아울러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에 다른 모 방송에서는 정명석 교주의 성폭행 관련 사건을 구체적으로 보도했기에 두 인물에 관한 만감의 교차가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는 않다. 이젠 이름만으로도 다름과 틀림에 대해 생각하게 되니 사역에 있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인지, 아니면 그냥 고단한 인생을 사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현대종교 vs 현대종교예나 지금이나 본지가 ‘현대종교’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해도 지금의 것과 선친이 섬겼을 당시의 ‘현대종교’가 같은 공간, 같은 이름의 단체이긴 하나 어쩌면 전혀(라고 말하고 싶진 않으나) 다른 의미를 내포하며 일해온 건지 모르겠다. 설립자의 의중과 마음을 제대로 이어가고 있는 건지?아울러 그 마음과 다짐을 제대로 새기며 살고 있는지 등이 그렇다. 만일 설립된 배경과 의미, 그리고 처음처럼의 마음을 놓치고 살아왔다면 단체의 형태나 목적, 그리고 자녀의 운영이라는 이유로 결코 ‘다르지 않다’라고만 고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 탁 소장께서 처음 현대종교를 시작했을 때의 다짐을 때마다 되새겨보고 첫 마음 잃지 않으며, 더불어 날마다 새롭게, 그러나 본질은 한결같을 때라야 자신 있게 ‘같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믿음의 유산 외에 사랑과 애끓는 정의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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