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하나님의교회 피해자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연구하며 얻은 대응 방법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들의 교회 앞에서 수년 동안 1인 시위와 집회를 했으며, 신도들과 수없이 대화를 했습니다. 또 탈퇴한 당회장들의 증언을 들으며 교리의 흐름을 연구했고, 실제로 어떤 반론이 효과가 있는지 현장에서 검증도 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교회 교리를 쉽게 해체하는 방법, 신도들을 흔들 수 있는 지점, 그리고 세뇌에서 빠져나오는 순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교회에 빠진 아내
20년 전쯤 아내가 교회를 다니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흔한 일반교회라고 생각했고, 그냥 다니게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안상홍을 아버지 하나님으로, 장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숭배하는 이단 종교인 하나님의교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그 교회를 떼어놓으면 될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해서 못 가게도 해보고 큰소리도 쳐봤는데, 그것은 오히려 아내를 교회에 더 깊이 붙잡히게 했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신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고 체계를 미리 심어 놓은 걸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1) 이 땅의 가족은 모형(가짜) 가족이다.
2) 반대하는 남편과 가족은 마귀가 역사한 것이다.
3) 핍박을 받을수록 믿음을 더 지켜야 한다.
그래서 아내를 교회와 끊어내려고 노력할수록 아내는 더 깊이 교회에 의존했습니다.
도움 받을 길은 막막하고
여러 교회들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가 외면했고 기독교 상담기관들도 절박한 저에게 비용부터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 한국교회는 이단·사이비에 대한 대책도 전혀 안 되어 있고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결국 온라인에서 피해자가 모인 카페를 찾았고, 그곳에서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2010년부터 그들과 함께 전국 하나님의교회 앞에서 1인시위와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신도들과 직접 대화하며, 그들의 심리 구조와 교리의 방향을 하나씩 분석해 나갔습니다.현장에서의 수많은 과정을 통해 저희가 얻은 핵심 결론은 하나님의교회 신도에게는 수백 개의 세뇌된 교리 침들이 박혀 있는데 이것은 “반박 순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순서 없이 반론하면 진흙탕 싸움 같은 논쟁만 될 뿐, 절대 교리를 깰 수 없습니다.
유월절 교리의 오류를 발견하다
하나님의교회에서는 “유월절”을 가장 중요한 열쇠로 가르치는데 그들의 핵심 논리는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을 얻을 수 있고(요한복음 6장), 그 살과 피는 유월절인 최후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에 담겨 있으며 새 언약을 세웠으니(누가복음 22장 19절), 유월절을 반드시 지켜야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유월절이 폐지됐는데, 1964년에 자신들의 교주인 안상홍이 유월절을 다시 부활, 회복시켜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기 때문에 안상홍이 재림 예수라고 주장합니다. 겉으로 보면 성경 구절도 인용하고 역사도 언급하니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 논리는 눈속임이며 억지로 잘못 끼워 맞춘 것입니다. 저들의 핵심 축은 단 하나의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1월 14일)이 유월절이고, 예수님은 다음날인 1월 15일 무교절에 죽으심”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전제가 맞으면 논리가 굴러가고, 틀리면 전체가 무너지는 것입니다.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재판과 처형 날짜를 유월절 예비일이라고 분명히 기록했고(요19:14), 유월절은 유대력 1월 14일 저녁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고 죽으신 날은 유월절 본 예식이 막 시작되기 직전의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예비일 새벽에 사형 선고를 받았고(요19:14),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으며(막15:25),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막15:34–37). 이 행적과 시간표는 당시 유대인들이 유월절에 행하던 의식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구약의 율법을 보면 유월절 양은 오전 9시에 성전에 데려왔고 오후 3시 해 질 무렵 잡았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의 성취”임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이 시간을 누구보다 세밀하게 기록했습니다.따라서 다음 날은 유월절 본 예식과 무교절 첫날이 겹치는 날이었습니다. 무교절은 유대력 1월 15일에 시작되며, 그날은 “거룩한 성회(절기 안식일)”로 노동과 피 흘리는 행위들이 금지됩니다(레23:6–7). 따라서 예수님이 죽으신 후 그날 밤은 “유월절 본 예식이자 무교절 첫날(명절 안시일)과 주간 안식일이 겹치는 큰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내려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했던 것입니다(요19:31). 따라서 예수님이 무교절 첫날에 처형되었다는 하나님의교회의 주장은 성경을 완전 잘못 해석한 것이며 유대의 절기 규례와 크게 충돌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유월절 예비일(1월 14일) 아침 6시에 재판(요19:14)
2) 같은 날 오전 9시 십자가에 못박힘(막15:25)
3) 같은 날 오후 3시 십자가에서 운명(막15:34–37)
4) 해 지기 전 장사, 몇 시간 후 다음 날은 큰 안식(유월절 본 예식과 무교절 첫날과 주간 안식일)이라 급히 시체를 처리(요19:31; 막15:42)
5) 따라서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본 예식 하루 전날, 즉 유월절 하루 전날 밤의 식사
정리하자면, 1월 13일 저녁은 최후의 만찬, 1월 14일 오후는(해질녁, 3시경) 유월절 양 잡는 날이고(유월절 예비일) 1월 14일 저녁(1월 15일 시작과 겹침, 오후 6시경)이 유월절 본 예식(하나님의 영의 심판=유월절 밤)의 시작이면서 무교절 첫날(명절 안식일)이고 주간 안식일입니다.유대인들은 성경에 따라 “해 질 때” 하루가 바뀌므로(일몰설, 저녁 6시가 하루 시작과 끝) 달력으로는 13일 저녁 식사가 14일의 시작과 맞닿아 있는 셈입니다. 결론적으로, “최후의 만찬 = 유월절 본 예식”이라는 주장은 성경의 시간표와 맞지 않으며 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교회사의 내용과도 충돌하는데 초대교회에는 성만찬을 기념하는 두 흐름이 있었습니다.1) 동방교회(14일파, Quartodeciman): 예수님의 수난일(1월 14일)을 따라 기념
2) 서방교회: 부활 주일을 따라 기념
동방을 “14일파”라고 부른 이유는 예수님의 죽으신 날이 14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최후의 만찬이 14일 저녁의 유월절 식사였고 예수님이 15일에 죽으셨다면, 교회사에 “14일파”라는 명칭이 아니라 15일파라는 명칭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교회사 자료에 있는 이 용어 자체가 예수님의 죽음이 14일이란 증거이기도 합니다.저는 하나님의교회 신도 여러 명과 이 부분에 대해 수차례 대화를 나눴고 저의 질문을 받은 많은 신도는 다른 주제로 돌리든지 반증을 제대로 못 한 채 흔들렸습니다. 하나님의교회 신도들에게 유월절은 “내가 구원받는 확실한 증표”, “우리만 아는 진리를 지킨다”는 정체성, “세상이 모르는 비밀을 가진 사람”이라는 도취감, 이 세 가지 감정이 겹쳐 강력한 심리적 고리를 만듭니다.그래서 이분법적인 정면 충돌 논박은 방어벽만 더 두껍게 만듭니다. 따라서 그들과 함께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시간표를 함께 읽고 이해시키며, 절기 규례의 뜻을 함께 확인하고, 교회사를 통해 진실을 알기 쉽게 순서대로 보여주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예수님의 행적을 통한 큰 시간표를 알려주는 것입니다.1) 요한의 명확한 날짜 지시: 유월절 예비일(요19:14)
2) 무교절의 절기 안식 규정: 피 흘림 금지(레23:6–7)
3) 시신을 해 지기 전에 내려야 했던 사정(요19:31; 막15:42)
4) 14일파라는 역사적 명칭의 존재유월절 교리의 또 다른 확실한 반박 증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1) 하나님의교회 신도들, 동역들과 현장에서 많은 얘기를 나눠본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들은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는 성경 구절들만 끼워 맞춰서 알고 있지 실제 유월절 예식이나 의미, 자세한 시간 개념 같은 내용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최후의 만찬일이 유월절이고 그때 먹은 게 유월절 저녁 식사였다면 그날 밤 예수님과 제자들이 저녁 식사 후 밖으로 나가서 겟세마네 동산에 오른 것과 대제사장들의 수하가 예수님을 잡기 위해서 밤에 돌아다녔다는 것이 성경적으로도 반대되며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출12:22, 유월절 밤은 아무도 돌아다니면 안됩니다).
2) 또한, 하나님의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유월절 폐지의 역사” 교육 자료를 보면 교회사 내용 중 325년 니케아 공의회 내용을 일부 인용한 부분이 있는데 내용을 설명하다가 중간에 “닛산 14일이었는데...”라면서 “...”으로 내용을 띄우고 다음 글을 다시 그 뒷부분으로 인용한 게 보입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제가 그 『교회사』 책자를 직접 구매해서 그 부분은 확인한 결과 놀라운 내용이 있는 걸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 숨긴 내용은 이렇습니다. “닛산 14일이었는데, 이날은 유월절 어린양이 잡혀 죽던 날이었고 그리고 사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이다.” 그곳엔 예수님의 죽음이 14일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저 내용을 알면서도 자기들의 교리의 타당성과 신도들을 세뇌시키기 위해 저 진실을 숨기고자 “...”으로 진실의 내용을 감춘 것입니다. 자기들의 교리 설명을 위해 인용한 교회사에 저들이 가장 숨기고자 하는 내용이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확실한 반증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내용을 현장 신도와 동역자들에게 물어봤더니 반증도 아닌 아예 대응조차 전혀 못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교리 오류가 밝혀지면, 세뇌의 사슬도 풀린다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부활절 날짜를 정하는 회의였지 유월절을 폐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확실한 증거』 p.64-65 니케아 회의록 소집 동기와 결의 참조). 최후의 만찬일은 유월절 하루 전날의 저녁 식사였고 예수님은 희생양으로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당하셨습니다. 무교절 첫날은 명절 안식일이라 주간 안식일과 같이 노동을 절대 하면 안 됩니다.따라서,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유월절이 폐지됐고 1964년에 안상홍이 회복했기에 그가 재림주라는 주장과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이었고 예수님은 다음날인 무교절에 죽으셨다는 저들의 주장은 성경에 크게 반하는 잘못된 주장인 것입니다. 이 논리가 깨지는 순간, 세뇌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풀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는 10년이 넘는 동안 현장에서 체험하고 검증한 반론 방법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피해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돕고 싶습니다.-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