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관련 한국교회의 사건, 사고를 접할 때면 우리가 비판하는 이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은듯하다.1.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고, 또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여전히 건강치 못한 교회의 부끄러운 이벤트는 계속될 테지만 반대로 뜻있는 교회의 빚진 마음의 삶이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투영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서로 공존한다.국가나 사회가 시끄러울 만큼 못 된 짓을한 인물이 나오기만 하면 기독교인, 그중에 성직자가 많다. 어려운 가운데에도 최선을 다해 빛과 소금의 역할 감당하고 있는 ‘진짜 목사님들’께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최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명성교회의 세습 문제 등까지 더해져 부끄러움이 많은 한국교회이긴 하나 그럼에도 정의는 여전히 강물처럼 흐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이 2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빠른 건지, 또는 늦은 건진 잘 모르겠으나 코로나와 맞물린 이단 및 문제성 단체들에 대한 소회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2. (2020년 10월호 닛시칼럼 내용에 이어) 작년 초 ‘신천지’ 문제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온 국민이 신천지 전문가가 됐더랬다. 기독교인에게만 익숙해 있던 ‘신천지’는 그렇게 공공의 적이 되었다.이후 2차 대유행의 단초를 제공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를 중심으로 한 사태가 ‘인터콥’으로 이어지고, 최근 ‘IM 선교회’와 그 옛날 말 많던 ‘영생교’까지 소환했다. 당분간 이 같은 일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신천지’와 ‘영생교’는 이단, ‘사랑제일교회’는 이단으로 규정되진 않았으나 전광훈 목사로 인해 수많은 사건의 시발점이 되어 한국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지탄받는 이유가 되었고, ‘인터콥’은 여러 교단에서 참여 금지 등의 규정이 있고 난 뒤, 최근 ‘기독교한국침례회’는 ‘불건전단체’,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예의주시’에서 ‘참여 금지’로 규정의 단계를 높였다. 코로나의 끝판왕이 된 ‘인터콥’은 언젠간 커다란 사건 하나 터뜨릴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그 예상은 현실이 됐다.그들은 이번에도 ‘인터콥’다웠다. 교계 일이건 세상일이건 이들만 관련됐다 하면 부끄러운 핫이슈가 되니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듯하다. 그러니 ‘사랑제일교회’나 ‘인터콥’이 ‘신천지’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는 의견을 한 귀로 흘려보내긴 어렵다. 한국교회 역시 비판 아닌, 비난에 휘둘리고 있다.코로나와 맞물린 이단 등을 지긋지긋하게 여겨온 것처럼 비기독교인들도 기독교인들과는 상종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더 씁쓸한 것은 ‘사랑제일교회’나 ‘인터콥’과 같은 목적을 안고 살던 이들이 전광훈과 최바울이 궁지에 몰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쳐내거나 꼬리 자르기에 급급해하고, 더 나아가 그들을 정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거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별 볼 일 없는 의리조차 사라진 모습을 보니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든다.그것이 정치인이나 교회, 내지는 목회자든 간에 말이다. 그들과 ‘불가근불가원’ 했던 교계 인사들의 회개와 반성을 촉구하며, ‘한교총’ 등은 늦게나마 ‘인터콥’에 대해 강력한 조처와 대책을 요구하긴 했으나 인터콥 조직에 관여해 온 교계에서 어르신이라 불리던 이들의 침묵과 ‘인터콥’이 회원으로 있는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역시 어떠한 입장 표명도 없음은 매우 유감스럽다.그 단체 등의 정당성에 기댄 문제성 단체와 사건에 동반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계속되는 침묵 속에 ‘인터콥’과 들러리를 자처하는(성격과 배경이 불분명한 세력 포함) 몇몇 이들만이 언론을 통해 번갈아 옹호 내지는 사과 같지 않은 사과문만 하나 달랑 내놓았을 뿐이다.이 역시 ‘인터콥’과 측근들답다. 아마도 기억하실 게다. 2004년에 3000여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선교 행사 ‘예루살렘, 베들레헴 평화 축제’를 개최하면서 논란을 빚었던 일, 당시 이라크 파병과 고 김선일 형제의 사건으로 중동에 있는 한국인들의 신변이 위협받던 때였기에 정부까지 나서 적극적으로 말렸으나 ‘인터콥’은 행사를 강행했다.그 외 2007년 샘물교회 23명의 신자 피랍 사건의 인솔자가 ‘인터콥’이라는 의혹과 2014년 한국인 청년들이 인도의 불교 성지에서 ‘땅 밟기’를 한 사건, 2017년 파키스탄에서 중국인 선교사들이 살해된 사건 등을. 그리고 작년에 터진 인터콥 발 코로나 문제와 그들의 음모론까지 더해져 한국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웃음거리가 됐는지를.국가와 사회에, 그리고 방역에 최선을 다해 1년 이상을 눈물과 피땀 흘려 싸워주고 버텨준 의료진과 국민에게 커다란 피해를 끼치고, 불투명과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는 ‘인터콥’의 행보와 비협조적인 태도, 아울러 변명에 변명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며 이단 사역의 허무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그간 속 시원히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또한 인정한다 해도 진정성없고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여지없이 매우 나쁜 신천지의 데자뷔가 됐고, 사건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다른 단체들로 이어지고 있다. ‘인터콥’은 구성원들이 교회마다 중직으로 자리매김해 단체에 대한 부정적인 입김을 제어하고, 그들 방식의 선교에 끌어들이는 것이기에 작금에 인터콥 문제가 있는 교회라면 분명한 결단을 내리지 않고서는 결코 문제를 풀 수 없음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특히 강의 현장에서도 ‘신천지’같은 이단보다 ‘인터콥’과의 마찰이 많았는데 인터콥에 대한 언급, 그 하나의 이유로 항의를 받곤 했다. 특이한 점은 항의하는 대부분이 장로나 권사, 내지는 안수 집사 등 중직자였던 것이 의외라면 의외였다. 과연 ‘인터콥’이 잘못된 주장을 회개하고, 한국교회의 지도를 온전히 받아들이길 바라며, 건강한 선교 마인드로 한국교회와 함께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이 최선일까 싶은 마음이 크다.그들을 지도하겠다고 나선 이들과 최씨를 공동대표로까지 올려놓은 ‘한기총’, 아울러 상당수의 교회에서 활동 중인 ‘인터콥’을 옹호하고 있는 일부 교회의 목사들과 중직들의 분명한 회개를 다시금 요구해 마지않는다. 종교 문제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아니! 소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못하며 살아가야 하는 일의 반복됨을 언제까지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할지!
3. ‘사랑제일교회’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작년 각 교단의 총회 때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에 관한 입장만 봐도 그렇다. 입에 담지 못할 막말과 사회와 교계를 혼란에 빠뜨린 이들에 대한 문제 제기 하나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별다른 입장과 결론조차 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실망과 절망이 컸더랬다.그러니 ‘신천지’나 ‘인터콥’ 등을 한국교회가 키워준 것이 아니라고 누가 항변할 수 있겠는가. 아울러 성경공부의 부재와 교회 구성원들의 섬김과 나눔의 부재 등으로 인해 발생한 이단 문제를 오롯이 피해자들에게만 전가할 수는 없다.4. 최근 종교 문제로 문화관광부와 언론사 몇 곳에서 연락이 왔기에 ‘세월호 사건, 국정농단 사건, 신천지부터 인터콥까지 문제가 터질 때마다 잠시 반짝이다가 사그라지는 관심이나 대책 말고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을 논했으면 한다’라는 이야기를 전했다.이후 찾아오겠다던 정부 관계자들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처럼 작금의 사건들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 모두 잊히고 말 것이다. 그래도 소수이긴 하나 교회와 사회 내에서 의로운 목소리를 꾸준히 내는 이들이 있기에 실망하진 않으련다. 예언자적 소명과 때마다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어지러운 사회를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이들이 전문가 그룹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과 성도들에게서도 시작될 수 있도록 여러 동기부여를 붙잡고 사역해야 하는 것이 본지가 행해야 할 마땅한 과제인 것을 잘 알고 있어서다.사회와 국가의 문제 외에 종교적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외로우나 의롭게 문제를 풀어간 이들 대부분은 민초들이었다. 여전히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소중한 것은 열 사람의 한 걸음이기 때문이고, 내가 빠지게 되면 그도 빠지고, 내가 나서게 되면 그도 나서게 되는 것이 삶의 이치라 믿기에 점차 종교인이나 비종교인도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 본지 50주년에 가장 어울리는 옷이 되지 않을까 싶다.5. 잘못되고 그릇된 소신과 신념이 교회를 넘어 국가와 사회까지 어렵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은 매우 어렵긴 하나, 반대로 가장 쉬운 일이기도 하다. 말씀의 일점일획이라도 더하거나 빼지 말아야 하는 것, 말씀의 중심 따라 그 말씀에 붙들린 채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부족한 것도 문제이긴 하나 지나친 것은 더 큰 문제라 생각한다. ‘지나친 것이 많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늘 부족하기만 한 건지?’ 한 번쯤은 뒤돌아보며 올 한 해 가야 할 길 뚜벅뚜벅 잘 걸어갈 수 있었으면 한다.반성을 담은 작은 다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여럿을 통해 시작되고 이어지게 된다면 더는 이단들이 설 자리가 없어질 테고, 동일 사건의 반복 또한 제대로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모두의 건투와 승리를 바란다. 부끄러움과 황망한 마음이 사라지고 나면 그 안에 감사와 희망이 자리할 수 있도록 소소하나 꼭 필요한 교회의 갱신이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이들을 통해 조금씩 시작되고 이어질 수 있길 소망한다.
- 저작권자 (C) 월간 현대종교(hdjongkyo.co.kr), 영리 목적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