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 · 칼을 들고 단체사진을 찍은 문형진 통일교 신도들 (출처: 문형진 페이스북) |
■ 전 세계 무대 삼아 문선명의 자리 대신해 활동하는 한학자
■ 문현진, “통일교와 무관한 평화운동가” 자처하지만 통일교 내 지지층 두터워
■ 공식 후계자 외 내세울 것 없는 문형진
문형진 통일교가 정통성을 주장하며 총기 소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의적 해석이긴 하나 성경구절까지 인용하며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학자와 갈라진 지 3년이 지난 상황에 “총기 소지가 통일교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것”이라 주장하기엔 어폐가 있다. 그럼에도 문형진 통일교는 총기 소지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 2월 28일(미국 현지시각)엔 통일교의 상징적인 행사라 할 수 있는 ‘합동결혼식’ 때 신도들에게 총기를 소지하게 해 세간의 질타를 받았다. 그런데도 문형진 통일교는 총기 소지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들은 왜 총기를 들게 되었을까?
참어머님으로 자리를 잡은 한학자
한학자 측은 문선명이 일구어놓은 통일교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교권을 가져오는 과정 중 아들 문형진과 갈등이 있었고, 문제를 제기했던 신도들도 있었지만 5년이란 기간 동안 노선이 정리된 상황이다. 결국 한학자는 통일교의 총재로서 종교를 넘어 통일교와 관련된 모든 계열사, 산하단체, 재단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각에선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리더’, ‘바지사장’이라 치부하지만 한학자는 전 세계를 무대 삼아 문선명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어울리지 않던 통일교 총재라는 옷이 점점 몸에 맞아가고 있다. 세간에서도 통일교의 정통성을 고수하는 문형진보단, 문선명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한학자에게 비중을 두고 있다.
평화운동가로 대외적 신뢰와 영향력 잡고 있는 문현진
문선명의 3남 문현진 이사장(글로벌피스재단, GPF)은 선친의 사망 전까지만 해도 유력한 통일교 후계자였다. 그러나 통일교 전체를 개혁시키려는 시도로 인해 내부의 반발이 컸다. 결국 2012년 9월 한학자가 이끄는 통일교와 결별 후 GPF를 통해 ‘초종교운동’과 ‘통일운동’을 펼쳐왔다. 그의 활동은 국제사회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문현진은 본인을 “통일교와 무관한 평화운동가”라고 자처하지만, 그의 사상적 토대는 문선명씨로부터 왔다. 실제로 문현진은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 아래 한 가족(One Family under God)’을 모토로 삼아 활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현진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통일운동이야말로 부친인 문 총재의 뜻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외형적으론 종교와 관계없이 독자노선을 구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통일교 내에는 문현진씨를 지지하는 세력이 남아 있고, 문선명 사상의 연장선에서 ‘종교운동’과 ‘통일운동’을 펼쳐왔던 터라 언제 통일교의 교권을 넘볼지 모르는 상황이다.
문선명의 참 후계자 명분으로 신도 규합한 문형진
문형진은 2010년 6월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으로부터 후계자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문선명 사망 이후 어머니 한학자에 의해 교권을 박탈당했다. 문형진씨가 설교에서 한학자 통일교 지도자들을 이단 세력으로 규정하고, 그 지위에 대한 해임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이후 문형진씨는 문선명으로부터 인정받은 후계자라는 정통성을 내세워 미국에서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문선명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똘똘 뭉쳤던 통일교 신도들에겐, 문형진이 가진 정통성은 어느 정도 먹혔다. 골수 통일교 신도들은 한학자가 문선명이 세운 교리를 변개하면서까지 총재의 자리에 올라간 것에 문제를 제기했고 문형진 통일교로 넘어갔다.
총기소지, 신도 규합 위한 가시적 상징물
▲총기를 들고 다과를 즐기고 있는 문형진씨 (출처: 문형진 페이스북) |
신도들을 모으기까진 성공했다. 그러나 실권을 짊어지고 있는 한학자 통일교와 또 언제 통일교의 교권에 들어설지 모르는 문현진을 견제할만한 힘이 없었다. 정통 통일교라는 명분으로 뭉친 신도들을 규합할 가시적 푯대와 힘이 필요했다. 나아가 사망한 문선명이 본인들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할만한 상징물이 필요했다. 문형진 통일교는 본인들에게 필요한 푯대와 상징으로 ‘평화군 경찰’ 조직과 ‘총기 소지’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문형진은 “나라를 세울 때 군과 경찰이 있어야 돼요”, “나라를 세웠는데 그 나라를 지킬 수 없으면 사탄권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평화군경찰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아버님(문선명)도 양(신도)들을 지키기 위해 늑대(사탄세력)들과 싸워나갈 수 있는 평화군 경찰을 만드셨다”며 총 · 칼을 들게 했다. 자의적 해석이긴 하나 문형진씨는 구체적으로 성경 구절까지 빗대어 총기 소지에 대한 당위성을 강조하며, 본인들이 문선명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총기 소지는 문형진 통일교의 발버둥이다. 참 후계자, 정통성을 배제하고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한학자와 문현진의 행보에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문선명 일가의 권력 투쟁 과정에서 초래된 고립이 비정상적으로 표출된 것이란 견해도 나온다. 이유야 어떻든 문형진 통일교는 문선명의 통치 아래에 있다는 상징적인 매개체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거나 부각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