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자식과 배우자에게 마저도 거짓말이 자유로운 이단들이, "설령 거짓말을 하더라도,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고, 살아서 영생을 얻고,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다면, 거짓말은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냐"라고 기독교인들에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과연 죽지 않고 육체영생하기 위해, 그리고 세상의 왕같은 제사장이 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거짓말하고 속이는 것이 합리화 될 수 있을까?
분명한 사실은 세상 그 무엇을 위해서도 기독교인들은 거짓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실성'과 '진정성'은 기독교인들의 운명이고 정체성이다. 기독교는 어느 시대, 어떤 환경 아래서도, ‘부활하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신들이 ‘그리스도인들’인 것을 숨긴 적이 없었으며(로마서 10:9), 복음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롬 1:16).
만약 이로 인해 고난과 박해가 주어진다면, 운명처럼 순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자신의 정체성과 신앙을 결코 숨기지 않았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의 신앙고백이다. 어느 시대를 만나든지 자신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세상을 향해 공적으로 선언해왔다.
신실한 신앙인들은 예수 안에서 지극히 미련하고 약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미련한 이들을 통해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시는 분이시고, 또한 한없이 약한 이들을 통해 세상의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시는 분이시다.(고전 1:27).
무엇보다 기독교인들은 신앙 안에서 융통성이 없고 고집불통이다. 당장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물론 어떤 누구도 종말의 때를 미리 알 수 없다), 성경적 가르침을 벗어날 수 없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고(고전 2:2), 그렇기에 세상은 이들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다(히 11:38).
기독교가 박해를 겪던 시대에는, 배교와 순교, 오직 두 선택만이 기독교인들 앞에 놓여 있었다. 예수를 버리고 배교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오직 남은 길은 예수를 위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정정당당하게 예수를 따라 순교의 길을 걸어야 했다. 이것이 기독교 역사이고, 우리 믿음의 뿌리이다.
하지만 이단은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신천지는 144,000명의 신도수를 채우기 위해, 모략이라는 이름으로 거짓말을 자유롭게 사용한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목적 못지않게 수단과 방법도 중요하다. 예수의 사랑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예수의 삶을 따라 진실한 마음과 몸으로 주님 재림과 종말을 기다린다.
또한 이단들은, 가족의 영생과 구원을 위해 가족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며, 거룩한 일에 헌신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학업과 일을 그만두도록 강요하며, 하늘나라의 상급을 명분으로 돈을 갈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가족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며, 세상 속 자신의 일터에서 성실하게 사역하는 그리스도의 편지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기꺼이 스스로 하나님께 자신의 소유를 바친다.
거짓말을 합리화할 수 있는 종교는 없다. 만약 거짓말을 교리적으로 합리화하는 종교가 있다면, 이는 종교를 빙자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이비(似而非) 종교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이러한 집단이 기독교일리는 만무하다.
거짓말을 통해 일신의 안전을 도모하고, 종교적인 목적을 일시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거짓말은 결코 영원할 수 없다. 진실성과 진정성이 결여된 종교는, 종교로서의 가치를 이미 상실한 사기성이 농후한 이익집단이다. 이런 점에서 신.천.지.는.기.독.교.가.아.니.다.
신천지는 “모략”이라는 이름으로 거짓말을 합리화한다. “모략”의 성경 원어적 의미는 ‘충고’ 혹은 ‘조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를 ‘거짓말'로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종교적으로 합리화하고, 신도들에게 이를 받아드리도록 강요한다면, 이는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나 죄를 짓는 것이다.
부모자식과 부부 사이의 거짓말을 합리화시키는 건전한 종교단체는 없다. 단지 종교의 탈을 쓴 사이비집단일 뿐이다. 역사상 거짓말을 하며 교세확장과 신도통제를 강화했던 사이비 기독교 단체가 결코 오랜 기간 지속되었던 적도 없다.
평양대부흥운동을 가능하게 했던 교회사의 비밀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권찰제도'이다. 권찰은 10명가량의 신앙인을 맡아 양육하던 평신도 지도자들로, 세상 가운데 살면서 주변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세상 가운데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거룩한 사람들이었다.
한국교회 성장의 주춧돌이었던 권찰제도는, 기독교인들의 삶과 신앙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세상과 거룩히 구별된 기쁨을 온전히 맛본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 가운데서 거짓 없이 진실하게 살면서, 삶으로서 기독교신앙을 증거한 것이다. 이들의 진실된 삶이 수많은 이들을 주님께로 이끌었고, 이것이 곧 한국교회의 대부흥이었던 것이다.
기독교신앙은 '거짓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고집스럽게 성경적 삶을 사는 사람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 고난, 죽음, 부활, 재림의 약속을 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거짓말을 일삼던 이단들은 역사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왔지만, 오직 진실만을 지켜온 교회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넘어진 적 없이 늘 이단의 도전에 승리해 왔다. 교.회.는.영.원.하.고.늘.승.리.한.다.
거짓말로 가정과 교회를 유린하는 이단들이, "거짓말을 사용하더라도 영생불사의 몸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편이 낫지 않느냐"고 우리에게 묻는다면, 우리는 담담하게 “예수만 알고, 예수만 바라보는, 고집불통 융통성 없는 삶을 살겠노라”고 대답하자. ‘거짓말’이 아니라, ‘진리'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기 때문이다(요 8:3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요한일서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