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은 청산유수고 기도와 찬양은 간절하기만 하다. 허나 그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 삶이 되질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들만의 총회 1. 올해 주요 교단 총회의 이단(등)과 관련해서 레마선교회, 로앤처치, 인터콥, 아멘충성교회, 덕정사랑교회 등의 결의 사항이 있었다.(자세한 사항은 이번 호 총회 특집을 살펴보길 바란다)
하는 일 때문인지 총회 때면 이단 관련 내용에만 관심이 간다. 나머지는 관심 밖.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고 싶은 것만 알려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세상 정치판과 다를 바 없어서인지, 그간 총회 현장의 달갑지 않은 모습들을 많이 봐와서인지 그냥 관심이 가질 않는다. 이번엔 그나마 예장고신 측과 고려 측의 통합 소식 등 (예장백석에 몸담고 있지만 이번 예장백석과 대신의 통합엔 별로 의미 부여를 하고 싶지 않다)나쁘지 않은 소식들이 들려와서 조금 낫다.
2. 그런 이에게 관심 밖의 것에도 흥미를 갖게 해준 것은 모 교계 언론(기사) 덕분이다. 우연찮게 본 이번 각 총회 현장의 주변 이야기 중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뭐랄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던 것이지만 다시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의미 있는 문제 제기가 형성될 수도 있는, 작은 깨달음이랄까. 대부분 교단의 총회 참여자들이 ‘남성들, 대부분 60대 이상들로, 정장을 한…’, 조금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한 번도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것들 말이다.
사회에서도 청년과 여성의 역할을 중히 여기고, 정치 또한 청년 등의 참여 폭을 넓히고 있는데 각 교단 총회에서도 청년 참여의 폭을 넓혀보고 그들의 의견을 청취해보자는 의견은 신선했다. 온 맘으로 동의한다.
최근 교회의 청년들이 교회 내 공동체의 문제 때문에 상당수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기사까지 겹쳐지면서 한국교회의 희망인 청년들의 문제를 총회에서도 심도 있게 다뤄본다든지, 아니면 직접 그들이 현장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배려해보는 것은 어떤가? 총대들이 주일학교부터 교육 전반에 걸쳐 현장의 목소리를 다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실제적인 당사자들의 출석이 크게 어렵지 않다면 실질적으로 문제를 풀어보는 것도 의미가 크겠다. 일면 파격적일지는 모르겠으나 청년 총대들을 세우거나 참관인으로라도 참여시켜 청년들의 고민을 직접 나눌 수 있는 그런 총회를 기대해 볼 순 없는 걸까? 여성 운신의 폭에 대한 안타까움에도 당연히 동의한다.
그간 총회는 늘 남성 중심의 것이었고, 여성들을 볼 수 있는 곳은 총회장의 안내석, 내지는 식당에서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는 모습 외에 그리 많지 않았다. 여러 교단들이 여성 안수 내지는 교회의 여성 참여 문제에 대해 조금씩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아직도 총회 회의장의 밖이 아니라 안에서는 여성들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3.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민주적인 총회현장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욕심인진 모르겠다. 작금의 정치 현장은 엉망이다 못해 절망에 이른지 오래됐고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져있다.
이럴 때 교단 총회나 교회 정치가 세상 정치의 현장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세상을 변화시키고 절망의 시대를 희망으로 이끌어줄 귀한 고리가 되어줄 수는 없는지. 내년 총회에서는 세상의 것들과는 차별된 신선한 총회의 모습들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 각 교단 총회의 모든 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라.
유감, 사이비 언론 상식적이지 못한 이단언론과 이단옹호언론들의 부끄러운 행위는 지금도 여전하다. 세상과 비교해서 교계언론이 더욱 도덕성과 윤리의 문제가 깨끗해야하지만 부끄러울 때가 많다.
단편적인 예로 본지에 기사화되는 단체들에게 연락을 취해 우리가 도울 테니 광고에 협조해 달라며 은근슬쩍 금품을 강요하거나 압박을 가하는 식의 구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게다가 마음 맞는 언론사들끼리 나름의 단체를 구성해 광고 등 건강치 못한, 나눠 먹기식 행태들을 일삼고 있으니 공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중엔 이단들을 옹호하는 언론도 적지 않다. 언론의 윤리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는데 그 같은 일들이 교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계 밖 세상에서도 비윤리적 언론 행위가 파다하다.
언론윤리에 어긋나는 부도덕한 행위뿐 아니라 정상적인 광고시장의 운영을 파괴하는 위험한 행동은 교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그래서 광고주협회는 기업주의 약점을 이용해 광고를 강매하는 매체에‘유사언론’이라는 딱지를 붙여 언론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듯 지금 한국의 언론풍토는 언론윤리의 무시가 공공연하다. 자신들의 잇속 차리기에만 더욱 매진하고 있다. 교계 언론을 포함해 한국 언론윤리의 정직함과 깨끗함이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다.
*문제는 세상에서건 교계이건 간에 이러한 일들에 뾰족한 해법이나 대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인터넷신문 등록 요건을 강화하는 신문법 시행령(안)을 입법예고 했다.
신문 방송 언론 탄압에 이어 인터넷언론에 대한 압박을 우려하는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 시행령(안)은 그 목적과 상관없이 전체 인터넷 매체 85% 이상을 정리하는 법안이기도 한데 저널리즘 품질 재고인지, 아니면 언론 통제인지 알 길이 없다.
종이잡지 전자잡지 종이책이 소멸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출판 사업도 디지털화된 음악 산업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현대종교」가 속해있는 <한국기독교잡지협회>에서도 그 의견들을 검토하여 빠르게 변화해가는 시대에 편승하기 위해 전자잡지시장에 뛰어들었다.
그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라 생각했다. 그러나 종이책 내지는 종이 잡지 시장의 소멸이 시기상조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은 전자책이 처음 시작된 미국에서조차 전자책 매출이 줄고 있으며, 반면 종이책 시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뭐랄까? 종이책이 주는 아날로그적 편안함과 오래도록 손에 익은 질감을 빠르게 교체하거나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하기 어려운 거라 해야 하나? 아무튼 예전 전축이라 불렸던 그 기계의 소리가 전해주던 평안함과 추억을 잊지 못해 다시금 턴테이블을 겸비한 오디오 시장이 재형성되고 있는 것이 비슷한 예가 될지는 모르겠다.
종이책의 예상 밖 선전이 미국에서는 동네 서점의 재기로 나타나고 있다. 이 땅에도 건물마다 들어서고 있는 카페와 미용실 등처럼 동네 서점이 증가될 수 있다면(하나라도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거기에 편승해 「현대종교」같은 잡지들도 더욱 활성화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모든 것을 새 부대에 넣어야 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지만은 아닌 듯싶다.
*전자책 시장을 폄훼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작금의 상황을 종이책과 전자책의 대결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서로의 건강한 공존함이 시대를 가로지르는 또 하나의 지혜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는 거다.
부디 말씀과 기도와 찬양,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사고들이 건강하게 우리 삶에 자리 잡힐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