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제의 시작과 동시에 총회 등 여러 행사를 치렀다. 10여 건이 넘는 재판과 열한 번의 월간지 발간작업을 진행했고, 수백 회의 강의 사역과 수천 회의 상담을 감당했다. 그렇게 빛의 속도로 2015년이 저물고 있다.
1. N포 세대, 빨대족과 캥거루족, 그리고 금수저, 헬조선 등 올해의 화두는 단연코 부정적 이고 자조 섞인 내용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어떤 것도 빼서는 안 되는, 모두 머리를 맞대고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들이다.
차제에 교계의 올해 화두를 살펴보자면 동성애 문제와 여전한 이단 문제들? 또는 찬반양론이 엇갈린 역사교과서 문제? 아니면 각 교단 총회에서 다룬 여러 헌의들? 갑자기 생각하려니 잘 떠오르진 않지만 세상의 것과 비교해도 적지는 않아 보인다.
2. 그 수많은 화두 중 본지만의 사역이 따로 있으니 2015년 칼럼의 마무리 역시 이단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다만 이번엔 이단 대처 단체(사람)들에 대해 조언으로 공간을 채웠다.
신천지 등 이단들의 적극적인 활동 때문에 이단 문제가 대부분의 교회에 관심사가 된 지 오래지만 그 관심이 더 이상 진화하질 않고 있다. 더 나아가 그 관심조차 불편하여 직접 나서기를 꺼리거나 구경꾼이 되어 침묵하기 일쑤다.
좋다. 그렇다면 버거움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으니 그 불편함을 그저 아무 말 없이 안아주기라도 하면 좋겠다. 사역자들의 부족한 부분이 보여도 ‘모두가 연약한 사람들이니’라고 생각하며 ‘더불어’의 마음을 품어주시고 기도해주길.
작금의 이단 문제는 바로 앞의 문제뿐만 아니라 좀 더 넓게 바라봐야 하며, 대처와 대안에도 무게가 실려져야 하기에 사역자들뿐 아니라 모두가 함께 고민하며 귀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 잘해도 욕먹고 못하면 더 욕먹는 사역이지만 마지막 때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사역이다. 사역자들의 건투를 빈다.
3. 먼저는 각 교단의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이대위). 얼마 전 한국교회 8개 교단 예장 합동, 통합, 대신, 고신, 합신, 기감, 기침 등 주요 교단 이단대책위원장들이 이단대책위원장 회의를 통해 “교단별법률자문단 구성, 이단 문제 공동 대응”, “이단 집단에 공격적 대처” 등으로 한국교회 주요 8개 교단이 법률자문단을 구성하고 이단 교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등 이단문제에 강력 대처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주요 교단이 법률자문단을 구성하기로 한 것은 이단과 관련된 소송이 제기됐을 경우 개인적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서이다. 각 교단은 반사회적 종교집단이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을 경우 이단대책위원회에서 검토한 후 법률자문단을 통해 자문할 계획이란다.
본지는 그간 각 교단 이대위의 수고에 늘 감사해왔다. 그래서 이대위의 연구와 활동에 조금이나마 그 수고를 덜어드리고자 여러 자료와 정보들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나눴다. 앞으로도 신앙 깊고 정직한 이들을 통한 이단 연구가 활성화되어 한국교회가 건강하게 잘 지켜질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몇몇 이대위원(장)들을 보노라면 한기총의 이대위 조직 구성을 나무라기만 할 수 없는 옥에 티가 있으니 안타까운 부분도 없지 않다. 몇몇 전 · 현직 인사들의 행보를 보면 밖의 적들과의 싸움뿐만 아니라 집안 문제를 먼저 검증하고 단속해야 함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심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이단성 있는 단체나 관계 금지 단체의 해제나 협력자로, 때로는 그 단체들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감싸 안는 모습이 공평무사하지 못하다. 교계의 불건전한 정치적 행보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대위 만큼은 그보단 깨끗하고 투명해야 하지 않겠나.
이단문제를 다룬다고 해서 이단 여부의 잣대까지 쥐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자 오판이다. 각 교단은 건강한 이들을 통해 이단대책위가 구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쩌면 이단 연구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을 갖고 엄격하고 철저한 검증을 해주길 바란다.
4. 각 지역의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활동은 그동안 전국을 돌며 직접 확인했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활동들이 주를 이뤘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리 비판할 것도 없다. 다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그 모임이 교파주의의 그늘에 머물지 않고, 초교파적인 연합도 넘어서서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모임으로 진화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시간이 흘러 정치적 이합집산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도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소극적이고 정치적인 대처로는 절대로 험난한 영적 전투의 승리를 맛볼 순 없기 때문이다. 교단 이대위들이 놓치는 부분까지도 잘 안아주어 더욱 향상된 모임으로 지역과 교회들을 섬겨주면 더할 나위없겠다.
충남 보령 지역의 경우, 이대위 모든 목회자들이 함께 공증을 서서 법적인 문제에 ‘더불어’의 책임을 지기도 했는데, 각 지역마다 특색을 갖춘 교만하지 않을 정도의 자긍 섞인 대처는 참 근사해 보인다. 이대위원(장)의 직분은 벼슬이 아니기에 자신의 행적들을 지나치게 자랑하거나 이대위 주최 행사를 ‘행사를 위한 행사’로 전락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 물질 부분에서도 투명해야 한다. 쓸데없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이단 집회의 우선순위를 물질로 둔 모임들의 초청이 기억에 남는다. 예전 강원도 어느 도시 이대위 주최 세미나 때의 일이다. 세미나 후 본지를 격려한다며 헌금을 걷었는데 주최 측이 그 헌금을 챙겨간, 있어서는 안 될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씁쓸한 기억이다.
5. 이단 대처의 꽃은 각 교회 이단대책팀의 활동이라 말할 수 있다. 교회 이단대책팀만큼이나 쉽게 만들 수 있고, 교회를 지키는 데 큰 도움 될 만한 것이 있을까 싶다. 반드시 교회마다(교회의 크기와 상관없이) 이단대책팀을 조직하기를 바란다.
예전 본지를 통해 소개됐던 청주 상당교회 이단대책팀의 활약을 보며 많은 이들의 경각이 있었지만 아직 경각만 있을 뿐,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적은 인원이어도(단 1명이어도) 상관없으니 이단들이 가장 버거워한다는 이단 대책팀의 활동으로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건강하게 지켜갈 수 있었으면 한다.
어쩌면 교회 건축보다 더 시급한 일이지 않겠나 싶다. 집안 내부도 못 지키면서 누굴 전도하고 선교한단 말인가. 또한 교회에서의 체계적인 성경공부 모임도 이단 대처에 가장 중요한 모임이라 할 수 있겠다.
6. 끝으로 이단 피해자들의 모임들과 언론들의 대처다.(한기총 등 연합 기관들의 이단 대책 이야기는 정중하게 사양하고자 한다.) 먼저 하나님의교회 피해자들의 활동을 보며 수십 명의 이단 피해자들이 수십만 명의 ‘하나님의교회’와 대적하며 그들을 당황, 당혹스럽게 했던 일들이 꼭 <명량>이란 영화를 보는 듯했다.
이러한 피해자들의 모임은 웬만한 교회들의 연합된 힘보다 강하다. 그들 의병들에 관군인 교회가 힘을 합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단 대책을 말하면서 이단 피해자들을 외면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물론 피해자들의 모임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이단 피해자들의 모임이 더욱 건강하게 이뤄지기 위해선 반드시 신앙의 힘으로 싸워야 함과 동시에 개인적인 문제로 시작된 싸움이 많지만 전체적인 상황을 보며, 함께 그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춰야 한다.
예전에 모 이단 피해 당사자로부터 이제부터 가족의 문제에만 신경 쓰지 않고, 이번 기회를 말미암아 이단사이비 퇴치에 앞장서겠다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하나님께서 귀한 계기를 허락하셔서 또 하나의 동역을 이뤄주시는구나!’라는 감동이 일었다. 영적 전투는 나무와의 싸움을 넘어서 숲의 싸움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 옳다.
언론에 있어서는 온 · 오프라인 등을 통해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사역에 매진하고 있는 언론들에 먼저 경의를 표하는 바다. 더불어 이단 언론(이단옹호 언론)들이 점점 득세하는 중에 소신을 갖고 어려움 속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언론들의 건투를 소망한다.
지금 당장은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으나 실망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묵묵히 잘 견뎌내길, 본지를 포함해서 우리 언론들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 아닌 그의 뜻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늘 지혜를 강구할 수 있길 바란다. 끝으로 여러 문제 제기들에 귀담아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가끔은 채찍질도 부탁드린다.
* 회복 사역의 경우, 상담의 조건으로 물질을 요청하는 일이 상식선에 어긋난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 가끔 있다. 당사자들 간의 이해와 조율이 필요할 듯싶다.
2015, 끝자락의 영화들 * 그래도 올해의 마지막 호인데 무거운 마무리는 안 되겠다 싶어 영화 이야기로 끝을 맺고자 한다.
스파이 브릿지 배우 톰행크스는 <다빈치코드> 등의 영화를 제외하곤 대체로 실망을 주지 않았던, 자타가 공인하는 명배우임이 틀림없다. 이번 영화 <스파이 브릿지>에서도 그 내공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영화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핵무기 전쟁의 공포가 최고조에 오른 1957년, 보험전문 변호사 ‘제임스 도노반(톰행크스)’은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마크 라이런스)’의 변호를 맡게 된다. 사형 집행을 원하는 국민적 정서에도 변호사로서의 신념을 지키고자 최선을 다하는 그는 온갖 위협에 시달린다.
때마침 소련에서 붙잡힌 CIA 첩보기 조종사의 소식이 전해지고 그를 구출하기 위해 스파이 맞교환이라는 사상 유례없는 비밀 협상에 나선다는 내용인데 거기에 또 다른 인질 하나를 더 구하기 위해 애를 쓰는 상황이 예전 작품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떠올리게 한다. 전장에서 실종된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펼쳐지는 수많은 에피소드에 그 영화 역시 신앙인의 삶과 맞물려 몇 번이고 글을 썼더랬다.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의 간절한 진심이 더해지는 순간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그 관심이 스크린 밖으로도 전달되었음은 물론이다. 세상의 영화가 주는 영향력조차 적지 않은데 말씀이 주는 그 영향력에 휘둘린 채 살아가는 것은 또 얼마나 근사할까.
검은 사제들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소재와 장르의 영화가 등장했다. 천주교 배경에 주인공들은 신부들, 그리고 내용은 오래전 봤던 엑소시스트 류의 한국판이라 할 수 있다. 귀신을 쫓는 가톨릭교 ‘구마의식’이기도 한데 영화에선 서울 명동 뒷골목에서 귀신들린 소녀를 두고 벌이는 악령과의 사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액션 대신말로만 싸운다는 것(?)이 다른 영화들과는 차별된다. 다른 사람들이 악마에게 밀리고 모두 후퇴할 때 주인공인 김신부는 남아서 끝까지 전선을 지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무튼 유명 배우들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긴 했지만 다소 무거운 주제와 내용이기에 흥행은 어려울 거라는 주변 사람들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현재 300만 명 이상의 관람을 기록 중이다.
그것들과는 별개로 최부제 역을 맡았던 주연 배우 강동원이 만난 신부의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신부 역할에 숨을 불어 넣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실제 신부의 도움이라면서 모 신부와 같이 지내던 중 어느 순간 그에게 “힘들지 않느냐?” 했더니 ‘나는 귀만 빌려주는 거야.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께 전달만 할 뿐이지’ 신부는 어떤 마음도 품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뒤통수를 맞는 느낌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번엔 이단들에게까지 주는 교훈이 적지 않다. 대통령 저리가라 할 정도의 의전과 누림으로 목회자의 자리까지 벼슬로 여기는 몇몇 대형교회 목회자들에게 던지는 질책과 더불어 시시콜콜한 일들에까지 예언을 남발하고, 감기, 두통 등의 귀신을 쫓아낸다며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쓰러뜨리며 안수를 남발하는 이단들에게 천주교는 물론이거니와 세상 영화조차 정신 차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 신천지 때문에 요한계시록 말씀에 꼼꼼히 귀 기울였으며, 세월호 사건으로 제대로 된 구원론을 공부하고, 다락방을 통한 교회론에 이어 이번엔 영화 때문에 오랜만에 귀신론에 대해 살펴봐야 할 것 같다.
3. 특종: 량첸살인기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기자 허무혁(조정석 분)은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일생일대의 특종을 잡지만 이것이 사실은 사상 초유의 오보임을 알게 되고, 이를 만회하려다 점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본지를 뒤돌아 봤을 때 반론과 정정보도가 없진 않았지만 그나마 철저하게 검증하며 써 내려간 기사들 덕분에 다른 언론들에 비해 그 수가 많진 않았다. 앞으로도 정정 보도 0%를 위해 더욱 철저히 검증하며 책을 펴내도록 노력하겠다.
아쉬운 것은 교계 언론을 포함해 수많은 언론이 제대로 다퉈보지도 못한 채, 세월호사건의 기사와 보도를 반론과 정정으로 변경 보도한 사실이다. 그간의 ‘아니면 말고’식의 기사에 대해 손가락질했던 그손가락이 이젠 우리를 향하고 있다. 앞으로 특종은 아니어도 결코 오보하지 않을 것을 다시금 약속드린다.
이제 곧 새로운 1년을 맞는다. 새해엔 더욱 기쁜 소식이 넘쳐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독자 제현과 올해 만났던 수많은 이들의 평안과 건투를 소망합니다. 참으로 수고들 많으셨고, 여러분들 때문에 늘 절로 힘이 났음을 고백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 사랑하고 축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