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연구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위험요소는 ‘사실왜곡’과 사료의 ‘취사선택’이다. 사실왜곡은 거짓을 진실로 믿게 만들고, 사료의 취사선택은 진실을 외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역사학자들에게 사료의 ‘비교분석’은 필수적이다. 비교분석을 통해 사실(fact)과 진실(truth)에 좀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단들에게 나타나는 현상들 중 하나는, 거짓말의 종교적 합리화이다. 포교활동과 신도통제를 위해, 소위 “모략” 혹은 “거룩한 거짓말” 등을 자유롭게 사용한다. 하지만 교회는 복음전파를 위해 거짓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숨기지 않으며, 복음을 결코 감추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이단사이비종교의 가장 뚜렷한 표징이다.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의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비윤리적인 포교행태를 보면서, 공익광고협의회의 최근 광고카피가 그 대처방안으로 떠오른다. “의심되면 의심하세요! 의심이 안심입니다!”
현대사회에는 다양한 증후군(syndrome)이 나타난다. 이들 중 리플리증후군(Ripley Syndrome)이 있다. 리플리증후군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꿈꾸고 동경하는 허구의 세상을 진실로 믿고, 거짓말과 행동을 합리화하게 되는 증상이다. 자신이 절실하게 원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단에 소속된 신도들에게도 리플리증후군이 나타난다.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 혹은 불만족스럽고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욕구 등으로 인해 이단에게 미혹된 후, 허구적인 이단교리를 진실로 받아드리고, 진위여부와 관련 없이 맹목적으로 믿게 된다. 이들에게 거짓은 거짓이 아니라, 진실로 향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만 이해된다.
예를 들면, 이단 신도들은 신격화된 교주가 사망해도, 이단단체를 이탈하기를 주저한다. 교주의 죽음을 받아드리는 순간, 이단단체에 몸담았던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도무지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교주의 죽음을 미화하거나 신격화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존재 이유를 찾게 되고, 주위에 자신 선택의 타당성을 설명할 수 있으며, 계속 이단단체에 남을 수 있는 명분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공허함과 혼동을 막는 유일한 길이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진실로 믿고 받아드리는 리플리씨(Mr. Ripley)가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이단 신도들은 종말론 등의 주장들이 실패하더라도, 이단단체를 떠나기 어려워한다. 종말주장을 실패로 받아드리는 순간, 자신의 지난 헌신과 희생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지난 노력이 결코 잘 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주위에 보이기 위해서라도, 또 다른 종말주장을 받아드리게 되고, 끝없는 종말의 날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위의 경우들처럼, 이단에 소속된 신도들은, 교주의 죽음이나 교리의 허구성 앞에서도, 진실을 직면할 용기를 갖지 못하게 된다. 오직 거짓을 진실로 믿고 받아드리는 길만이 자신의 연약한 자아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증후군이 이단 신도들 안에 스며들어 자리 잡고 있다. 리플리증후군의 치료는 ‘의문’과 ‘의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한편 교회는 므두셀라증후군(Methuselah Syndrome)을 앓는 듯하다. 므두셀라증후군은, 과거의 기억들 중, 좋은 추억은 기억하고, 나쁜 기억을 지우려하는 심리상태를 의미한다. 선별기억을 통해 부담스러운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경향성을 보여준다. 과거의 기억들 중, 기억하고 싶은 일들만을 취사선택하는 것이다.
선교 130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새로운 영광을 만들기 위해 애쓰기보다,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 용감했던 믿음의 선진들의 이야기들을 되풀이하거나, 근현대사 속에서 한국교회가 민족을 위해 헌신했던 일들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면서도, 지난 날 교회가 신앙의 이름으로 행했던 오류들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입을 닫는다.
전체 국회의원의 40퍼센트가 기독교인인 나라, 수많은 사회지도자들이 기독교인인 나라, 세계적인 두각을 나타내는 선교 강국, 그리고 양적 성장이 극대화된 ‘아름다운’ 한국교회의 모습만을 기억하기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반면 영광의 그늘 뒤에 있는, 참담한 교회의 모습으로부터는 애써 고개를 돌린다.
순교자들의 이야기에 감동하면서도, 사리사욕에 집착해 교회와 민족을 저버렸던 친일지도자들의 행적을 언급하기는 거북해 한다. 복음전도에 헌신한 선교사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친일협력과 교회분열을 조장한 선교사들의 이야기는 애써 외면한다. 대부흥운동의 강권적이고 공개적인 회개 사건들은 드러내려고 애써도,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축소하는데 급급했던 이율배반적인 교회지도자들의 모습에는 놀라우리만치 관용적이다. 일제강점기 아래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가족과 명예를 포기한 신앙의 선배들의 이야기는 자랑스럽게 되풀이하지만, 손익계산에 집착했던 교회정치꾼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거북해 한다. 한국전쟁의 열악한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피난지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던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연을 착취하고 이웃에게 무관심한 현대 교회의 모습은 자꾸 감추려고만 한다.
현재에 불만족하며, 과거의 좋은 기억만을 취사선택하여 기억하려는 한국교회가, 므두셀라증후군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제와 오늘의 과오를 직시하고 직면할 수 있는 신앙적인 용기이다. 이 용기를 통해, 어제의 잘못을 겸허히 노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지혜와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하루하루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아갈 수 있다.
교회 스스로 교회의 지난 아픔을 보듬고 사랑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교회를 대신해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교회가 나쁜 기억을 지우고 잊는데 급급하기보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좋은 기억들을 창조해 나아갈 때, 한국사회의 교회를 향한 부정적인 인식은, 긍정적인 기대로 변화될 것이다.
이단과 교회 모두에게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리플리증후군에 걸린 이단이 므두셀라증후군을 앓는 교회에게 도전하는 형세이다. 거짓을 진실로 믿으며 사실을 왜곡하는 이단에게는, 자신이 믿는 진실이 거짓말일수 있다는 의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좋은 모습만 취사선택하려는 교회에게는, 역사가 증언하는 부정적인 교회의 모습도, 사랑하고 받아드리며 회개하는 진솔한 자세가 요구된다.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잠언 12:19)